캠퍼밴을 만드는 장면 - 마우이 홈페이지에서
우리 가족은 만약에 대비해서 프리미엄팩(캠퍼밴 보험)에 가입했었습니다.
우리나라 렌트카 보험 중 완전면책에 해당합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한번이라도 사고가 나면 보험 재적용이 안된다거나 여러가지 제한이 따르는데 비해 뉴질랜드는 여행 선진국답게 몇번의 사고가 나더라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상해준다고 하네요.
뭔가 하나 가입하려고 하면 온갖 경우의 수를 다 따져야 손해보지 않는 우리나라와 달리 휴대폰도 그렇고 보험정책도 그렇고 단순하고 명확해서 머리 아프지 않아 좋습니다.
여러가지 보너스를 함께 제공하므로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하실때는 꼭 프리미엄팩을 선택하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프리미엄팩에 무료제공되는 품목, 차가 뒤집히는 경우를 제외한 사고는 몇번이든 무상으로 보험처리됩니다.
사고 접수후 차 운행에는 문제가 없는 수준이니 직접 캠퍼밴을 몰고 본사로 오라고 해서 다시 마우이로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고차량을 즉시 교체해줄 줄 알았는데 워낙 성수기인지라 남은 캠퍼밴이 없다며 내일 오후 2시까지 차량을 수리해줄테니 그때 다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소형차 하나를 무료로 렌트해준다고 하네요.
마우이도 퇴근시간인지라 부랴부랴 캠퍼밴에서 중요한 짐들을 꺼내서 소형차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운전석에 올라보니 내비게이션이 없습니다. 마우이는 짐 옮기는 사이 문을 닫아버렸네요.
마우이에서 제공받은 소형차
하지만 워낙 준비성이 철저한 남편은 이럴때를 대비해서 스마트폰에 뉴질랜드 전지역의 내비게이션 지도를 담아왔습니다. 다만 뉴질랜드 지도 데이터가 워낙 부실하다보니 우리가 원하는 곳의 정확한 주소 없이 이름만으로는 잘 검색이 되지 않더군요.
어찌어찌 한양마트라는 한국인 마트를 찾아갔습니다. 사고 직후였지만 차가 작아서인지 남편의 운전은 능숙했습니다. 쌀과 반찬을 사고 한인마트 옆에 있는 스시집에서 초밥을 사 차안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일식집은 참 많은데 우리나라 음식점도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공항근처의 한인마트(한양마트), 바로 옆에서 스시나 피자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였죠. 한양마트의 직원분이 숙소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카이코우라에서 묵을 생각이었기에 크라이스트처치에는 숙소예약을 해놓지 않았습니다. 설령 비상시라도 캠퍼밴만 있으면 그 안에서 잘 수 있으니까 별 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죠. 어떤 경우라도 방 하나야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요.
그런데 정말로 호텔부터 캠핑장까지 모든 숙소의 예약이 꽉 찬 것입니다. 크라이스트 처치 시내에는 많은 숙소가 있었지만 모두 No vacancy 사인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평일임에도 호텔,모텔 할 것 없이 모든 숙소가 No Vacancy 였습니다.
여기저기 수십통 전화를 하고 (현지폰을 준비하지 않고 로밍으로만 했으면 전화비만 해도 엄청났을 것입니다.) 직접 시내를 비집고 다녀도 빈방을 찾을 수 없어 호텔 한 곳에 부탁해서 인터넷으로도 검색을 해봤지만 빈 방은 없었습니다.
성수기때 크라이스트처치는 예약없이 숙소잡기 어렵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사람 없고 한가하다고 믿었던 뉴질랜드에서 이런 일을 당하다니 믿을 수가 없더군요. 차라리 시 외각으로 나가보라는 말에 무작정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남쪽의 아카로와 쪽이 숙소는 많지만 산악지대를 밤길에 통과해야 한다고 해서 미리 지도로 살펴본 카이코우라 방향으로 달렸습니다.
하지만 시외각의 시골분위기 나는 동네까지 모두 no vacancy 였습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한참 벗어난 시골마을 모텔간판 밑에도 no vacancy 사인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시간은 아홉시가 넘어 캠핑장이나 백팩킹하는 곳들까지도 문을 닫은 후였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밤중에 모르는 길 가지 말고 차라리 차안에서 밤을 지새자고 했지만 남편은 건강이 안좋은 제가 노숙을 하는 것은 안된다며 어떻게든 숙소를 찾겠다고 계속 길을 달렸습니다. 내일 다시 크라이스트 처치로 돌아와야 하는데 말이죠.
한참을 가다가 잠깐 고속도로 편의점에 들렸던 남편은 직원에게서 근처 해변가 비치에 가면 늦게까지 하는 홀리데이 파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내비게이션 안내도 없이 시골길을 달려갑니다. 마음이 콩닥콩닥 걱정이 치밀었는데 거의 길이 끝날 무렵 숲속에 있는 작은 캠핑장을 하나 발견합니다.
크라이스트 처치를 벗어나 우리 차가 달려간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도 이미 문을 닫은 상황, 저는 속이 확 상했지만 남편이 사무실 문을 두드리자 기적적으로 중년의 여성분이 나옵니다. 아마도 주인이 홀리데이 파크에서 직접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닫혀있던 오피스에 불이 켜지는 순간 큰 한숨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캐빈이라고 하는 우리나라로 치면 작은 방갈로같은 방이 비어있다고 안내를 해주네요. 허름하고 좁은 방이었지만 비맞고 사고 나고 추위에 벌벌 떨며 몇시간을 헤매여서인지 얼마나 고맙고 안도감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뉴질랜드에서의 첫번째 숙소
단촐한 실내모습, 주로 백패커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뉴질랜드에서는 캐빈이라고 부른답니다.
사실 그 후 우리가 묵은 홀리데이 파크들에 비하면 규모와 시설이 가장 떨어지는 곳이었지만 청소가 깨끗이 되어있고 온수샤워실과 세탁실까지 설치되어있다는 점에서 뉴질랜드는 확실히 여행 선진국이었습니다. 더구나 다음날 일어나보니 이 홀리데이 파크도 바닷가 바로 옆 좋은 자리에 위치해있더군요.
우리나라 오토캠핑장과 비슷한 느낌의 와이쿠쿠 비치 홀리데이 파크
이곳은 많은 블로그들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곳이고 주인도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놀라는 눈치입니다. 이름하여 와이쿠쿠 비치입니다.
바닷가 바로 옆에 위치한 와이쿠쿠 비치 홀리데이 파크의 위성사진 모습
무슨 미션 수행을 한 것 같은 첫날이 지나가고 뉴질랜드에서의 둘째날, 한결 여유를 찾은 우리 가족은 비치에 나가보았습니다.
예정에 전혀 없었고 알지도 못했던 와이쿠쿠 비치 해변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 황량했지만, 나름 멋진 풍광의 해변에 단체로 놀러온듯한 아이들이 즐겁게 모래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는 넓은 바닷가는 이곳이 바로 뉴질랜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아이들들이 선생님과 함께 자유롭게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여름 성수기임에도 사람 하나 없는 해변가에는 강아지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강아지들이 마치 우리 개인양 재롱을 떨고 쫓아다니는데 갑자기 초롱이 생각에 마음이 울컥하네요. 초롱이는 검이의 작은 아빠네와 고모네에서 번갈아 봐주기로 했는데 어찌 지내고 있는지.
검이 주변을 계속 맴돌던 덩치 큰 강아지는 너무 순해서 함께 기념사진까지 찍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래 파는 것을 보더니 그 옆으로 가서 함께 파네요.
바다가 바로 앞인데도 비린 냄새 하나 없이 너무나 맑은 공기에 가슴이 확 뚫립니다. 아름다운 바다를 쳐다보며 좀더 여유를 즐기고 싶었지만 캠퍼밴을 찾으러 다시 크라이스트 처치로 가야했기에 서둘러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과연 캠퍼밴은 잘 고쳐졌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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