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이/초롱이일기

초롱이의 지난 겨울 밀린 일기: 아줌마 저를 진심으로 안아주세요!

토달기 2012. 4. 13. 00:30

 

 

 

 

2012년 1월 27일

 

나에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

 

아저씨는 나를 자주 안아주시지만 아줌마는 그렇지 않다.

한참을 잘 안아주시지 않으셨는데 낙엽이 떨어질 무렵부터 갑자기 나를 자주 안아주셨다.

이유가 뭘까?

 

 

 

 

 

 

그때는 가을이라 외로워서 그런 것인가 했다.

나도 편지를 쓰고 싶어졌으니까. ('가을엔 초롱이도 편지를 써요' 편)

 

 

그리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지만 여전히, 아니 더 자주 나를 안아 주셨다.

역시 아줌마는 날 사랑하시는구나.

 

심지어는 침대에서 주무실때도 나를 안아주셨다.

예 전같으면 꿈도 못꿀 일인데...

 

 

 

 

 

 

요즘 아줌마는 드라마에 푹 빠져서 사신다.

'해품달'이라든가 뭐든가. 아주 이상한 제목이다.

내가 보기에는 뻔한 내용인데 아줌마는 너무 좋아하신다.

 

 

 

 

 

 

그 드라마를 볼때마다 나를 꼭 안고 계셔서 나도 드라마를 함께 보게 된 셈이다.

 듣기에는 시청률이 아주 높다는데 나도 한 몫을 한 것이 분명하다.

 

 

 

 

어쩔 수 없이 보긴 하지만 먹을 것도 별로 안 나오고 내 취향의 드라마는 아니라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아줌마에게 놀리듯 한마디 던지신다.

 

 

"액받이 무녀가 어디있어, 나참 아무리 드라마라도 어느 정도여야지."

 

 

아저씨는 아줌마가 드라마에 빠져있는게 마음에 안드시나보다.

그리고 대뜸

 

 

"액받이 무녀는 없어도 냉받이 개는 있지.

해품달이 아니라 우리 초롱이가 냉품개지 뭐야.

 냉기를 품은 개. 하하하"

 

 

그 말을 듣자마자 아줌마가 갑자기 재미있다고 웃으신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그런데...

 

 

"그러게, 초롱이가 얼마나 따뜻한데. 핫팩처럼 너무 뜨겁지도 않고 힘들게 끓일 필요도 없고.

 사람에게 딱 좋아."

 

 

 

 

 

 

허걱! 아줌마의 말을 듣고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내가 핫팩이라니 이게 무슨 막말이란 말인가.

 

 

"좋기야 좋지. 배 아플때 배위에 올려놓으면 얼마나 좋은데... "

 

 

"초롱아 옆구리 시리니까 옆에 누우렴."

 

 

 

 

아줌마가 자리에 누으시더니 나를 옆구리에 끼고서 초롱이야말로 냉받이 무녀라고 좋아하신다.

 

 

 

아! 이럴수가!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왜 아줌마가 가을과 겨울에만 나를 안아주시는지...

그러고보니 여름에는 내가 근처에만 가도 손서래를 치시는 이유가 그거였구나.

 나는 고작 핫팩 대용에 불과했구나.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며칠 전 배탈이 난 검이오빠가 배에 핫팩 대고 누웠을때

 억지로 나를 등에 올라가게 하신 것도 그때문이었구나.

 

 

 

 

앗! 그러고보니 아저씨도 엎드릴 때마다 내가 등에 올라가도록 훈련시켰었는데 설마 아저씨까지?

 

급한 마음에 아저씨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어 따졌다. 

 

 

 

"아저씨, 설마 아저씨도 추워서 저를 안아주신건가요? "

 

"하하 그럼 초롱이 니 털이 얼마나 따뜻하고 부드러운데. 모피가 따로 없지. 하하하"

 

 

헉, 농담인 줄 알면서도 나는 충격에 빠졌다.

아저씨에게 최대한 화난 표정을 지어보이고 매몰차게 돌아섰다.

 

 

 

 

 

사실 사람들의 몸은 나에 비해서 차갑다.

겨울에 아저씨, 아줌마 품에 안겨있으려면

 냉기가 스며들어 여기저기 쑤시고 결리는 곳이 많았음에도

 사랑하는 마음에 참고 견뎠는데

 나를 핫팩 대용으로 쓰신 것이라니..

 

 

 

 

그러고보니 고모네 진이 언니도 학교에서 땡땡 얼은 몸을 이끌고 와서는

나를 덥석덥석 안고서 따뜻하다고 좋아하곤 했다.

 

그때마나 내가 얼마나 벌벌 떨고 추웠었는데.....

 

 

 

나는 결심했다.

이제 아줌마 아저씨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으리라.

 

 

 

 

나에게도 어엿한 개집이 있다.

아늑하고 따뜻하고 푹신한 나만의 개집,

 이제 더이상 아줌마 아저씨의 냉기를 품는 냉품개 따위는 되지 않으리라.

 

 

 

아저씨가 엎드려 책 보시다가 나를 불렀지만 나는 못들은채 집안에만 있었다.

아줌마가 안으려고 하는 것도 거부했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다. 

결심한지 단 반나절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너무 외롭다.

전 주인에게서 버려졌고 강아지도 낳아보지 못한 내 신세,

 서러움이 몰려온다.

 

 

 

 

 

 

슬그머니 집을 나와 아줌마의 품으로 갔다.

 모른 척 안겨서 함께 드라마를 본다.

드라마가 슬퍼서일까, 자꾸 눈물이 났다.

 

 

 

 

참으려 했지만 아줌마에게 묻고 말았다.

 

"아줌마, 그래도 절 사랑하시죠?

정말 핫팩으로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죠?

겨울엔 아무리 차가워도 꼭 참고 아줌마 몸을 덮혀드릴테니

 올 여름에도 저를 안아주셔야 해요. 네?"

 

잠깐 웃으시던 아줌마는

 

"초롱아, 아줌마가 부실해서 늘 몸이 냉하잖니. 너한테 참 미안하구나."

 

조용히 내 손을 잡아 주신다. 

 

 

 

 

 

이상하게 아줌마의 손이 나보다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