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2.02.12-03.02 뉴질랜드 여행

부실한 아줌마의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 15 - 테카포에서 미리내를 보다

토달기 2012. 10. 29. 12:23

 

 

 

 

카이코우라에서 테카포까지 가는길 - 구글맵(maps.google.com)

 

 

2012년 2월 17일

아침 일찍 테카포로 출발하려던 계획이 배낚시로 늦어지면서 오후 두시가 되서야 카이코우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카이코우라 올때 넘었던 험한 산길을 포함해 400 킬로가 넘는 길, 부지런히 가야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크라이스트처치까지는 이미 지나왔던 길이지만 날이 맑아서인지 한결 아름답고 지루하지 않습니다.

 

 

드디어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양떼들도 보게 되네요. 비가 올때는 어디 숨어들 있었는지....

 

 

 

지나는 마을마다 소박하고 평화로와보입니다. 그러고보니 남섬 온 후로는 빌딩은 커녕 이층집도 거의 못본 것 같습니다.

 

 

빌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섬의 마을들, 나즈막한 지붕이 파란 하늘과 바로 맞닿아 있습니다.

 

 

 

주말이 다가와서인지 나무그늘 아래 벼룩시장이 들어섰네요. 물건들은 뭐 ^^ 소박합니다.

 

 

 

크라이스트 처치를 지나 드디어 테카포로 향하는 고속도로, 고속도로라고 해도 왕복 2차선에 불과하지만 카이코우라 가는 길과 달리 굽은 길도 없이 평평하게 죽 뻗은 길을 지평선 바라보며 끝없이 달리게 됩니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시원한 지평선을 따라 죽 뻗은 도로를 한없이 달려갑니다.

 

 

이래서 처음 남섬와서는 테카포 쪽으로 방향을 잡으라고 했구나 싶을 정도로 운전이 쉽고 뉴질랜드하면 딱 떠오르는 그림들이 계속해서 눈으로 달려들어옵니다.  

 

 

 

카이코우라 가는 길과 달리 평평하게 이어지는 도로에 몸과 마음이 나른해집니다.

 

 

하지만 다이나믹한 카이코우라 가는 길보다는 좀 심심해서인지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배멀미에 고생했던 검이는 일찌감치 침대에서 잠이 들어있었고요.

 

 

 

 

남섬에서 뉴월드가 있으면 제법 큰 마을이란 뜻입니다.

 

 

배가 고파 일어나니 마침 뉴월드가 있는 조금 큰 마을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뉴월드는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인데 뉴월드가 있으면 도시라고 볼 수 있고 아니면 거의 시골 동네라 음식점 하나 찾기가 어렵더군요. 애슈버튼이라는 곳이었습니다.

 

 

 

 

평일이고 날이 아직 환한데도 저기 보이는 상가들이 모두 문 닫은 뒤였습니다.

 

 

마우이에서 받은 네비게이션의 케이블이 불량이고 캠퍼밴 싱크대의 물이 잘 안빠져서 케이블과 뚜러펑을 사려했지만 여섯시가 넘으면 동화속 마을처럼 모두 문을 닫는 뉴질랜드인지라 쇼핑은 포기하고 배고픔이나 달래야 했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꼭 한번은 들르게 되는 맥도널드가 뉴월드 옆에 있었습니다.

 

 

다행히 뉴월드 근처에 맥도널드가 있었습니다. 해외 여행할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맥도널드는 세계 어딜 가나 우리가 아는 익숙한 맛인데다 와이파이도 무료로 쓸 수 있고 정말 반가운 곳이더군요. 망설이지 않고 맥도널드로 들어갔습니다.

 

 

 

햄버거를 좋아하진 않지만 뉴질랜드산 고기여서 그런지 배가 고파서인지 너무나 맛있었던 맥도널드 버거세트들  

 

 

 

이제 먹었으니 다시 힘을 내서 달려야 합니다. 시간을 보니 오후 8시가 다 되가지만 아직 밖은 훤하고 검이아빠 말로는 앞으로도 두 세시간은 더 달려야 할 거라고 하네요. 힘든 검이아빠를 생각해서 옆에 있어주려 했지만 결국 저는 또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지나는 마을들도 가로등이 켜지고 남섬에서의 본격적인 심야운전이 시작됩니다.

 

 

 

산이 없는 평야지대라 태양이 지평선으로 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만 운전하는 사람은 힘들겠습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일어나보니 어느덧 석양이 진 하늘,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검이아빠는 뉴질랜드의 풍경에 취해 운전이 즐겁다고 하네요. 검이를 조수석에 앉히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밤길을 달려갑니다.

 

 

 

 

남섬에서의 밤운전이란 이런 느낌... 평야가 끝나고 마을도 불빛도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석양이 질때는 멋있었는데 밤이 되자 조금은 무섭더군요. 오후가 되면서 날이 흐려지고 간간히 빗줄기도 뿌려서인지 하늘엔 별빛조차 없는데 가로등 하나 없는 시커먼 밤길에 수없이 많은 벌레들이 차창에 부딛히고 헤드라이트 너머로는 마치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듯 어둠만이 가득합니다. 흡사 자동차가 아니라 우주선을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테카포는 관광도시답게 한밤중에도 이용가능한 무인주유소가 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까만 밤길을 달리고 달려 기름도 다 떨어져가고 토달기 마음에 걱정이 한가득 차오를 즈음, 드디어 테카포 호수 마을의 불빛이 보이고  다행히 무인 주유소가 있어 고생한 캠퍼밴의 허기를 달래줄 수 있었습니다.

 

 

 

 

야속하게도 문을 닫아버린 레이크 테카포 홀리데이 파크

 

 

그러나 걱정하던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원래 묵으려 했던 홀리데이파크가 문을 닫아버린 것입니다. 원래의 계획은 테카포 홀리데이 파크에 묵으면서 테카포 스프링(노상온천)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온천욕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거야 배낚시를 선택하면서 포기했다지만 이렇게 한밤중에 묵을 곳도 없는 신세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테카포 호수를 바라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테카포 스프링스 홈페이지 이미지 (tekaposprings.co.nz)

 

 

다른 홀리데이파크를 찾아볼까 주변을 돌았지만 역시 문을 닫았고 더 찾아봤자 사정은 비슷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벌써부터 고생할 걱정에 애간장이 녹아드는데 무한 긍정주의 검이 아빠는 걱정말라며 이럴때 바로 캠퍼밴이 좋은 거라고 여유만만입니다.

 

하긴 캠퍼밴만 있으면 자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검이 아빠는 호수를 따라 산길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이유는 자기 전에 테카포 호수와 밤하늘을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간신히 빛을 찾아왔는데 쉴 곳도 못 정하고 다시 어두운 곳으로 달려가는 불쌍한 캠퍼밴

 

 

사실 테카포에 온 이유는 호수를 보기 위한 것도 있지만 테카포의 밤하늘을 보기위해서였거든요. 테카포는 밤하늘 별이 잘보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천문대도 있고 유네스코에 테카포 밤하늘을 등록하자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로 별이 많이 보인다고해서 궁금하던 차였죠. 그러나 오후부터 날이 흐려 과연 별을 볼 수 있을 지, 뉴질랜드 여행기에서도 테카포 별을 못보신 분들이 많더라구요.

 

 

 

테카포에 위치한 마운트 존 천문대 홈페이지 (http://www.newzealandsky.com/earthandsky/mt_john/mt_john.html)

 

 

 

검이 아빠는 더욱 빛이 없는 어두운 곳으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드디어 호수의 파도 소리가 가까이 들리는 곳에 이르렀고 우리 가족은 함께 나무 숲을 해치고 호숫가로 향했죠. 다행히 조금씩 먹구름이 가시고 있었고 하늘을 보니 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뭐 그래도 우리가 강원도 오지에서 보던 밤하늘 정도는 별이 있네 하면서 호수에 다다른 순간 아.....

 

눈이 아니라 온 몸, 아니 마음까지 본다는 것이 이런걸까요.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느껴지는 호수의 맑은 물빛 그리고 그 너머 하늘에 천천히 떠있는 별들, 이 세상 가장 깨끗한 곳에서 부는 듯한 바람, 내 오래된 걱정을 털어내는 싱그러운 나무 냄새, 풀 향기, 그리고 바다보다 아늑한 호수의 파도소리, 부드러운 흙으로 파고드는 발가락 끝에서 바람에 날아오르는 머리카락 끝까지, 내 몸에서 빛이나는 듯 가벼워지며 아득하게 가득하게 차오르는 기쁨으로 '아' 하는 탄식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어떻게든 찍고 보정도 해보았지만 호수도 별도, 그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을 수 없었습니다.

 

 

끝이 없을 듯이 한없는 호수가 간신히 끝을 보이려는 그곳에 바람을 품은 듯한 먹구름 사이 사이로 목화솜처럼 부드럽게 번지는 별빛이 피어나고 그 조그만 빛들은 암흑의 호수에 비단같은 너울을 수놓아 하늘을 품은 커다란 거울을 만듭니다.

 

열이라면 여덟아홉은 어둠뿐이었는데, 그 보이는 하나 둘이 날카로울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구름을 녹이듯 서서히 드러나는 호수의 별무리들, 별 사진들은 최대한 그 당시의 느낌을 살려 보정한 것입니다. 

 

 

바람이 조금은 차가웠나 봅니다. 눈썹아래가 촉촉해졌어요. 풍경에는 무관심이던 검이조차 와우 하는 귀여운 탄성을 머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사진에도 담을 수 없는 그 암흑속의 아름다움 덕에 기억이 가장 소중하고 완벽한 카메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날이 맑아지면서 테카포의 별들이 모두 깨어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정도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참을 물소리 바람소리, 별이 호수에 여울지는 소리 속에 서 있자니 남편이 손을 꼭 잡아줍니다.

셋이 손잡고 올라오는 길, 처음에는 무섭게 보이던 숲속 나무들도 정답게 느껴지고, 그 가지 사이로 시인의 글귀를 읽으면서 캠퍼밴으로 돌아오는 토달기는 20년을 거꾸로 달려 소녀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올려다본 하늘, 아 거기서 드디어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보았을 그 아름다운 하늘의 물줄기, 미리내를, 지금도 선명히 떠오르는 별들의 강을 저는 머리 위에 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 테카포의 별들은 분명 더 많았는데.... 이 정도 밖에는 담아오지 못했습니다. 

 

 

 

구름을 훑어낸 테카포의 하늘은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낮보다 더 밝은 별빛의 소나기가...

 

 

"정말, 강물같네요. 은하수라고 부른 이유를 알겠네요."

 

 

검이의 말에서 검이 아빠는 어마어마한 보람을 느끼고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진짜배기 은하수를 보여주겠다는 것이 이번 뉴질랜드 여행의 미션 중 하나였었거든요. 저 또한 평생을 간직할 기억의 사진을 가지게 되었고요.

 

 

 

 

 

물줄기가 되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던 별들... 미리내라는 우리 말이 딱 어울립니다. 

 

 

 

한참을 쳐다봐도 질리지 않을 아름다운 별하늘이었지만 추위에 약한 토달기는 호수의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캠퍼밴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낭만파 검이 아빠는 한참을 지나도 들어올 줄을 모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배낚시를 나가고 장장 아홉시간에 걸쳐 여기까지 왔건만 피곤하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하긴 부실한 아줌마 토달기조차도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보다 훨씬 아름다운 별들이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 통에 몸이 잠들고도 한참은 가슴이 뭉클거렸으니까요.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 같고 노래 같았던 테카포의 별들, 그 아래서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던지....

 

 

 

고향 땅에서도 보지못한 미리내를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날, 호수의 바람은 차디찼지만 별빛 가득한 하늘은 따뜻했던 날,

 

 

오늘, 텅 빈 밤하늘을 보면서 그날이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테카포 천문대 타임랩스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