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2.02.12-03.02 뉴질랜드 여행

부실한 아줌마의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 16 - 테카포, 은하수가 내려 빙하호를 이룬 곳

토달기 2012. 11. 19. 11:39

지난 밤 별들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테카포 하늘 아래 우리는 남섬 여행 처음으로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전한 곳을 찾다가 테카포 아이사이트 근처에 캠퍼밴을 세우고 잠이 들었죠.

 

 

테카포 호수를 등지고 넓직한 주차장을 구비한 아이사이트가 있습니다.

 

 

카이코우라에서의 바다낚시, 장장 여덟시간의 이동, 그리고 늦게까지 별에 취해 잠을 이루지 못했음에도 아침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 눈이 떠지더군요.

무엇보다도 어젯밤 파도소리로만 들었던 호수가 보고 싶었습니다. 꽤나 쌀쌀한 새벽공기를 느끼며 옷을 여미고 차를 나서는데 남편도 따라오네요. 많이 피곤할 것인데 피곤하지가 않답니다. 뉴질랜드산 맑은 공기의 힘일까요, 아니면 테카포 별들의 정기를 받은 것일까요.

 

 

 

탁트인 호수를 바라보는 일식집 고한 레스토랑 뒤로 멀리 선한 목자의 교회가 보입니다.

 

 

 

테카포 아이사이트 뒤로 어스름한 빛이 맑아지면서 드넓은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테카포 호수,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고 고요하면서도 큰 소리가 들릴 듯한 신비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다만 아직 햇빛이 무르익지 않아서인지 빙하호 중에서도 특히 아름답다는 테카포의 물빛은 보이지 않습니다.

 

 

 

 

선한 목자의 교회로 가는 짧은 순간에 뉴질랜드 날씨답게 살짝 비가 내렸습니다.

 

 

좀더 가까이 호수를 보기위해 캠퍼밴을 몰고 선한 목자의 교회로 향합니다.

이곳은 정말 유명한 곳이지요. 뉴질랜드 오기 전부터 사진으로 수없이 봐온 곳이지만 역시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선한 목자의 교회, 작지만 아름답고 경건함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교회를 보면서 교회답다고 느꼈습니다. 

 

 

 

개척시대를 함께한 양치기 개들에게 감사를 표하기위해 만든 양치기개의 동상

 

 

교회 옆으로는 뉴질랜드인들의 개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양치기 개의 동상이 있습니다. 태양을 등지고 선 양치기 개는 든든하고 우람해보였지만 문득 초롱이 생각이 또....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초롱이 생각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초롱아 ~~~

 

 

 

교회 주변에서 결혼 사진을 찍는 커플이 있습니다.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저 교회에서 결혼한다면 얼마나 낭만적일까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사진을 찍는 신부의 모습이 호수와 교회에 잘 어울립니다.

 

 

어느덧 아침 식사시간이 되어 검이가 배고픔을 호소합니다. 드디어 캠퍼밴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

 

 

 

그림보다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배고픈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품은 캠퍼밴은 순식간에 멋진 레스토랑으로 변신합니다.

 

 

 

오늘의 쉐프는 검이, 저는 보조 요리사가 됩니다.

 

 

 

가재가 너무 커서 제일 큰 들통에 한마리씩 따로 삶아야 할 정도입니다.

 

 

검이 비장의 레시피는 바로 카이코우라산 크레이피쉬 버터구이, 배멀미를 해가면서 잡아온 두마리의 커다란 가재는 우리 가족의 배고픔을 채워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 검이의 카이코우라 낚시 체험기  http://blog.daum.net/todalgy/304 )

 

 

 

캠핑에서 단련된 솜씨로 능숙하게 가재요리를 선보이는 마스터 쉐프 검이입니다.

 

 

 

맛은.... 한마디로 기가 막힙니다. 카이코우라 노천까페에서 사먹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네요.

 

 

 

살이 꽉 차있는 크레이피쉬, 맛도 일품이고 두마리를 먹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마침 버스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하는데 구수한 냄새와 캠퍼밴이 궁금해서인지 많이들 들여다보시며 이것저것 물어보십니다.

 

 

 

단체 관광객들이 작은 교회를 가득 채웁니다. 안타깝게도 사진 몇장을 찍고는 급하게 호수를 떠나는 일정입니다.

 

 

그런데 단체관광의 경우 선한 목자의 교회에서 사진 몇번 찍고 호수를 휙 둘러보더니 바로 떠나더군요. 우리나라 특유의 사진 남기기식 관광인 것 같습니다. 제한된 시간에 호수 봤고 사진 찍었으면 되었지 싶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잠시 후 실감하게 됩니다.

 

 

 

태양이 강렬해지면서 아침에 보았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관광객들이 떠나고 좀 한가해진 시간에 다시 호숫가로 나온 순간 태양이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크고 넓고 맑고 시원했지만 세계적인 명성에는 뭔가 아쉬었던 테카포가 마법과 같은 변신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침까지는 맑은 호수에 불과했지만 태양이 강렬해지자, 알고 있는 언어의 영역 밖에 있는 색이 나타납니다.

 

 

호수의 물빛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순식간에 바뀌더니 태어나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아름다운 푸른 빛을 빚어내기 시작합니다.

분명 가까이서 본 물빛은 투명하고 맑은데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영롱하면서도 속이 탁 트이는 시원한 파랑빛이 됩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마실 수 있을 듯 투명한 물이지만 조금만 멀리보면 파란빛,  초록빛으로 스르륵 변해버립니다.

 

 

더구나 물빛이 하나가 아니라 계곡 쪽에서 호수쪽으로 들어갈수록 짙은 초록색에서 가을하늘보다도 맑은 파랑색으로 슬슬슬 변해가는데 가슴이 울렁거릴정도로 그 빛이 아름답습니다. 물빛인지 햇빛인지 주변까지 너무 선명하게 푸르러서 눈이 시릴정도입니다.

 

 

 

투명함보다 더 깨끗한 파랑색, 테카포의 물빛이 딱 그러했습니다.  

 

 

 

 

선한 목자의 교회 안에서 바라본 테카포 호수... 아름다움, 고요함, 경건함, 말로는 부족한 풍요로움.... 

 

 

호수 하나에 이렇게 감동을 받을 수 있다니, 아까 떠난 관광객분들, 한시간만 더 머물렀어도 이런 광경을 놓치지 않았을텐데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뉴질랜드에 와서 느낀 것은 뉴질랜드 여행만큼은 자유여행을, 그것도 반드시 맑은 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이코우라의 바다에서도 느꼈지만 남섬의 호수들을 보면서 더 절실하게 느끼는 점입니다.

 

 

 

떠나기가 아쉬웠지만 아름다운 테카포를 떠나 남섬의 지붕 마운트 쿡으로 떠나야할 시간입니다.

 

 

 

 

해가 중천에 뜨면서 더욱 신비한 빛을 뿜어내는 테카포 호수가 멀어집니다. 

 

 

오르막길을 한참 달려 언덕 높이 올랐는데 갑자기 남편이 탄성을 지릅니다. 고개를 돌려 테카포 호수 쪽을 본 순간 제 입에서도 큰 탄식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빛나는 태양을 품은 테카포 호수가 사파이어보다 훨씬 더 영롱한 빛으로 사야를 가득 채우는 바람에 압도당하듯 숨이 막혔던 것입니다. 저는 입밖으로 좋다 나쁘다는 표현을 잘 안하는 편인데 풍경을 보고 이렇게 소리내서 탄식까지 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던, 정오의 태양을 품은 테카포 호수의 모습,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남편이 뉴질랜드 여행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이때의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지못했다는 것입니다. 가파른 언덕길이었고 뒤따르는 차들이 있어 할 수 없이 지나쳤는데 지금도 가끔 후회될 정도로 아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었더라도 그 아름다움을 절반도 담지 못했을 것이기에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는 사진보다 선명한 기억이 되어 지금도 가슴을 설레이니까요.

 

 

밤하늘 가득 넘치는 은하수와 병풍처럼 두른 거대한 산맥 아래 한없이 영롱한 빙하호의 마을, 살면서 테카포란 이름을 잊을 수 있을까. 천년을 살아도 힘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