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2.02.12-03.02 뉴질랜드 여행

부실한 아줌마의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 17- 아오라키의 유빙을 보다.

토달기 2013. 4. 29. 14:07

 

 

 

비현실적인 푸카키를 지나 우리가 향한 곳은 마운트쿡 국립공원입니다.

 

 

 

푸카키 호수를 따라 절경이 이어지는 마운트쿡 가는 길

 

 

마운트 쿡 (Mount Cook)  뉴질랜드 최고 높이의 산(해발 3754m)으로 뉴질랜드를 탐험한 제임스 쿡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원주민들은 구름을 뚫은 산이란 뜻의 아오라키라고 부르기 때문에 '아오라키 마운트 쿡' 이라고 부릅니다.

 

 

구름을 뚫고 만년설을 덮은 채 우뚝 솟은 뉴질랜드의 지붕 마운트쿡

 

 

 

마운트쿡이 워낙 큰 산이라 여러가지 포인트가 있지만 가벼운 트래킹을 위해 많이들 선택하는 케아 포인트나 후커밸리 포인트로 가려고 했는데 네비게이션이 말썽을 부리더니 결국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처음 받았을때부터 접속불량인듯 작동이 되었다 안되었다 했는데 사고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신경쓰지 못했죠.

 

 

 

평야 지대에 거대한 설산이 우뚝 솟아 있는 빙하가 만들어낸 독특한 U자형 지형.

 

 

대비성이 철저한 남편은 뉴질랜드 내비게이션을 스마트폰에 설치해왔지만 지도가 단순하고 입력된 POI가 많지 않아 케아포인트나 후커벨리 포인트 같은 곳은 안나오더군요. 할 수 없이 마운트 쿡 국립공원을 설정했더니 우리를 비포장의 험란한 산길로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비포장 도로, 산으로 올라갈수록 울퉁불퉁,고불고불, 좁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캠퍼밴은 가능한 비포장길로 몰고가지 말라고 했지만 처음에는 길이 넓고 평탄해서 계속 달렸습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길이 꼬불꼬불 산길이 되더니 차선도 하나로 좁아져서 차를 돌리기조차 쉽지 않게 되더군요. 빙하 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이어져 몇번이고 다리를 건넜는데 다리폭이 어찌나 좁은지 식은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차 한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정도로 좁은 다리폭, 산으로 올라갈수록 더 좁은 다리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제까지도 아슬아슬한 넓이의 다리를 건넜지만 이건 뭐 차원이 다르네요. 좌우로 한치의 여유도 없는 다리를 건너자니 다른 분들 블로그에서 다리 건너다가 후사경이나 옆면을 긁었다는 말들이 이해가 되더군요.

 

 

 

후사경이 닿을 듯, 좁은 다리 밑으로는 독특한 빛깔의 빙하수가 시원하게 흘러내립니다.

 

 

 

그러나 이미 캠퍼밴에 완전히 적응한 남편인데다 운좋게도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많지 않아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넘어질 듯 쓰러질 듯 흔들리는 캠퍼밴 안에서 힘을 주어 버티던 저는 거의 초죽음이 되었지만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과 신선하다 못해 싱싱하기까지한 공기가 피로회복제보다 더 빨리 저를 회복시켜주었습니다.

 

 

 

깊은 산속의 주차장마저도 힘든 여정을 용서하게 만들만큼 웅장한 풍광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경치조차도 배고픔을 달래주지는 못하더군요. 차를 타고 온 것만으로도 너무 배가 고파 캠퍼밴 안에서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는데 이제까지 먹었던 짜파게티 중 가장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먹느라 사진조차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배고픔도 잊은채 바로 주변 탐사에 나서는 검이는 미션 하나를 또 완수해냅니다.

 

 

 

제가 짜파게티를 준비하는 사이 검이와 남편은 고산웨타를 잡아왔습니다. 웨타는 우리나라 곱등이와 비슷한 종이지만 혐오대상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뉴질랜드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 곤충입니다. 그중 세계에서 제일 큰 자이언트 웨타는 천연기념물대우를 받고 있고 고산지역에 사는 이 고산웨타도 발견하기 쉽지 않다고 하던데 역시 곤충왕답게 순식간에 잡아왔네요.(웨타는 정글의 법칙에도 나왔죠. 병만족장과 리키 김이 맛있다며 먹더군요.ㅡㅡ;)

 

 

 

푸카키 아이사이트에서 본 고산웨타, 뉴질랜드인들의 웨타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찾기쉽지 않다던데 짜파게티 끓이는 짧은 시간에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검이입니다.

 

 

 

곱등이 사촌이라고는 하지만 선명한 무늬와 밝은 색상에 나름 스타일리쉬한 모양의 고산웨타

 

 

뉴질랜드 미션 중 하나가 바로 웨타를 채집하고 관찰하는 것이었는데 검이는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깨끗한 산에 살아서일까요, 자세히 보니  징그럽기만 한 것이 아니고 제법 귀티나는 면이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든 잡아가려 했을 검이지만 어느덧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깨달은 검이는 원래 자리에 웨타들을 놓아주었답니다.

 

 

 

웨타는 관찰 후 잡은 곳에 다시 놓아 주었습니다. 집 찾아 떠나는 웨타의 뒷태가 징그러우면서도 귀엽습니다.

 

 

 

사실 이곳은 네비게이션 고장으로 어딘지도 모르고 온 곳입니다. 그래도 등산객들이 있고 트래킹 코스가 있어서 우리 가족은 트래킹에 도전하기로 합니다.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빙하호로 알려진 타즈만 호수로 가는 트래킹 코스가 있었습니다.

 

 

다행이 짧은 트래킹 코스가 있어서 그리로 향하니 타즈만 호로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나오네요.

타즈만 호라면 빙하가 떠내려오는 호수라며 남편이 가보자고 합니다. 뉴질랜드는 지금 늦여름인데 과연 빙하가 남아 있을런지요.

늦은 오후라 부담은 되었지만 이왕 온것 끝까지 가보기로 합니다.

 

 

 

검이와 검이아빠 뒤로 기가 막힌 병풍이 펼쳐져 있습니다.

 

 

 

알프스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설산들을 눈앞에 두고 올라가는 길은 등산을 싫어하는 저조차도 매력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햇살이 부담스러울정도로 강하고 뜨거운 날인데다 산을 오르는데도 신기하게 전혀 덥지가 않았습니다. 고산지대라 공기가 차갑고 바람이 계속 불고 있어서 그늘에서는 서늘한 한기가 느껴질 정도이고 따가운 햇빛과 시원한 바람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어 쾌적한 기분으로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황량한 길 주변에는 이름모를 풀들과 꽃들이 돌밭을 뚫고 솟아 있었습니다. 

 

 

 

하산하는 등산객들과 가끔씩 마주칠 뿐 한참을 우리 가족 홀로 걸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무리의 관광객들이 나타납니다. 뉴질랜드에서 단체관광객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 이런 깊은 산속에 단체관광객이라니? 말하는 것을 봐서는 일본인들 같았습니다.

 

 

 

 

테카포 호수에서 만난 한국인 단체관광객 이후 처음 보는 단체 관광객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단체관광객들의 정체는?

 

 

 

 

 궁금중은 곧 풀렸습니다. 조금 더 걷다보니 마침내 타즈만 호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관광객들은 빙하체험을 하러온 사람들인 것이죠. 그나저나 타즈만 호수 역시 한 비쥬얼 하는군요. 좋게 말하면 우유빛, 나쁘게말하면 시멘트를 걸죽하게 풀어놓은 듯한 비현실적인 호수가 환타지에나 나올법한 수직의 절벽아래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끝자락에 빙하들이 두둥실 떠있는 모습이라니.... 참 말을 잃게 합니다.

 

 

 

 남섬의 호수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고 잊을 수 없는 첫인상을 남기는군요.

 

 

 

타즈만 빙하 (Tasman Glacier) 호수  길이 29KM, 폭 4KM에 깊은 곳은 6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계곡 빙하 호로 후커 빙하, 뮬러 빙하와 만나 푸카키 호수로 흘러들어간다고 합니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처럼 멀리 보이는 빙하들은 물 밑으로 훨씬 거대한 얼음덩이가 잠겨 있다고 하네요.

 

 

 

가까이 다가가서 본 모습입니다. 빙하가 바로 녹은 물이라 손을 넣으면 얼음처럼 차갑습니다.

 

 

 

미리 예약한 관광객들은 고무보트에 나눠 타고 빙하 체험을 하러 갑니다. 한 여름이라 빙하가 많이 녹았고 멀리서 보기엔 작아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규모가 꽤 크고 물속에는 몇배나 더 큰 빙하가 잠겨있다고 하네요. 빙하를 만지는 것은 물론 직접 먹어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빙하체험에 나서는 관광객들, 뉴질랜드에서 이렇게 길게 선 줄을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일본인관광객을 태운 노랑고무보트, 하얗고 뿌연 물빛때문에 마치 얼음위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보트를 타고 직접 빙하를 만져보진 못했지만 눈으로 본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얼음물에 뛰어드는 체험도 있다는데 몇초도 버티기 어렵다고 하는군요. 실제로 호수에서 한기가 올라와 추위를 타는 저는 호수 근처에 오래 서있지도 못하겠더군요.

 

 

 

 

멀리선 작아보였는데 보트가 빙하에 다가갈수록 생각보다 큰 빙하의 크기에 놀라게 됩니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빙하가 만들어내는 물빛의 변화입니다. 어쩌다보니 우리는 테카포에서 푸카키 그리고 여기 타즈만까지 빙하의 근원, 호수의 탄생지까지 거슬러 올라온 것인데 맑고 푸르던 물빛이 근본에 이를수록 흐리고 탁한 물빛으로 변해가는 셈입니다.

 

 

 

빙하에서 멀어질수록 뿌옇던 물빛이 푸르게 변해갑니다.

 

 

 

빙하의 성분이 적당히 섞이면 아름답지만 너무 많으면 오히려 뿌옇게 변하는 것을 보니 뭐든 지나치면 좋을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산을 내려오는 남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은 젊을수록 맑고 푸르고 나이들수록 하얗게 새는데 여기 호수는 거꾸로 어려질수록 흐리고 탁해지네. 사람도 나이드는 것이 늙는 것이 아니라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얘지는 것 아닐까?"

 

 

 

하얗게 센 할머니의 백발같았던 타즈만호지만 빙하가 막 녹아서 만들어진 어린 호수인 셈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한길 짧은 키의 토달기가 어찌 알겠습니까? 테카포의 영롱한 푸른 빛에서 출발한 호수의 여정이 푸카키의 밀키블루를 거쳐 할머니 백발같은 타즈만 호에까지 이를 줄도 몰랐으니까요.

 

 

더구나 이 뿌옇고 탁한 호수가 세월을 따라 흘러, 비와 만나고 바람에 섞이고 햇빛을 품으면 그토록 아름다운 남섬의 푸른 호수들로 거듭난다고 하니 웬지 모를 감동이 느껴집니다.

저의 짧은 생각에 아름다운 물빛에는 은하수도 조금 흘러들었을 것이고 사연많은 눈물들도 보태졌을 것 같습니다.

 

 

 

아오라키는 구름을 뚫어 빙하를 만들고 그 빙하는 태양을 품어 호수를 낳았습니다. 

 

 

 

 

처음엔 산에 오른 줄 알았더니 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빙하를 만났습니다.

구름을 뚫는 산으로부터 하얗게 태어나 땅의 가장 낮은 곳에 이르러 푸르게 나이들어가는 빙하의 삶,

 

지켜보기에 가슴이 벅찰만 하지 않은가요?

 

 

 

내려갈 때도 오를 때처럼, 넉넉한 오빠들같은 듬직한 산들이 함께 해주었습니다.